어노니머스 프로젝트 부산전시 : 일상을 다시 보게 되는 행복한 전시
인스타를 보다가 광고가 하나 떴다. 한 사진전의 광고인데 네이버 사전예약으로 지금 결제하면 50% 할인된 금액으로 관람할 수 있다고 한다. 안 할 이유가 있나? 네이버 포인트도 있겠다, 사진전이잖아. 이건 가봐야지. 그래서 한 달 정도 전에 예약을 하고 지난 13일 와이프와 함께 다녀왔다. ‘어노니머스 프로젝트 부산’전시다.
👍 : 보는 것 이상의 즐거움
👎 : 하체운동
1. 언제나 설레는 사진전
이번에는 어떤 장면들을 볼 수 있을까. 사진전을 가기 전에 항상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광고나 전시소개를 통해 대략적인 사진전의 분위기나 일부 작품은 볼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니까. 거기다 반값이잖아? 지금은 15,000원으로 인상됐다. 여러 모로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 전시장으로 갔다.
이전에 요시고 사진전을 했던 그곳이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처음 오는 느낌이다. 발권을 했다. 티켓부터가 다른 전시회랑 다르게 신경을 좀 쓴 느낌이다. 티켓만으로도 기념품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전시장 안에서 사진촬영이 가능하지만 무음모드로만 가능하다고 한다. 나는 내 rx100을 들고 갔기 때문에 설정에서 오디오신호를 모두 껐고, 아이폰의 경우 라이브모드를 켜면 촬영이 가능하다고 한다. 갤럭시는....안 써봐서 모르겠네..? 사실 이런 것들이 필요하긴 하다고 생각한다. 전시를 보러오는 사람들이 셔터소리에 방해를 받으면 안 되잖아. 왜들 그렇게 사진을 찍는 건지. 조용하기라도 하면 그나마 괜찮을 것 같다.
2. 새로운 경험
입장을 했다. 여러 사진들과 전시의 소개가 시작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제껏 봐왔던 전시에서는 본 적이 없는 전시가 마련되어 있었다. LED전등이 들어오는 테이블 위에 작은 필름 들이 흩어져 있었고, 그 위에 함께 놓인 뷰잉렌즈를 필름 위에 놓고 들여다 보면 색다른 시각으로 사진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그냥 걸려있는 사진은 사실 어느 정도의 거리감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이런 방식은 작품을 조금 더 가깝고, 자세하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입체감도 느낄 수 있어서 어릴 때 많이 봤던 매직아이(이거 알면 3040)처럼 다가와서 반갑기도 하고 작품도 평면작품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음이 신기하기도 했다.
이 외에는 여느 전시와 크게 차이점이 없었다. 테마별로 작품이 나뉘어 있었고, 유년시절이나 휴가, 애완동물 등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번 전시의 작품들을 한 작가의 전문적인 작업물이 아니라 한 수집가에 의해 수집되고 선별된 작품들로, 모두 전문작가가 아닌 사람들의 작품이라고 한다. 하지만 어느 사진보다 더 멋있게 다가왔다. 어쩌면 전문작가들의 작업영역과 나 사이에 있었던 거리감이 많이 사라졌기 때문이겠지.
그런 이유 때문일까. 사진 속 사람들도 모두 표정이 밝다. 사진들의 분위기도 밝다. 자는 사람, 우는 사람의 모습들도 있지만 그 속에서 풍겨지는 분위기는 그리 어둡지 않다. 내셔널지오그래픽, 매그넘 이런 사진전들을 보면 전쟁터, 어딘가 아픈 사람들, 난민 등을 담은 장면들이 많았기 때문에 머리 속에 생각도 많았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그럴 일이 없이 와이프와 손을 잡고 보면서 캠핑 중인 노부부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이렇게 늙자는 생각을 하고, 애완동물들이 있는 사진에는 그냥 동물들을 귀여워 했다. 아이들 사진에서는 미소를 눈여겨 봤다. 나는 그게 이 전시를 온전히 즐기는 방법이라고 말하고 싶다.
3. 다리가 좀 아픈데?
전시는 두 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사람마다 전시를 보는 시간이 좀 달라질 수 있다. 우리는 시간이 좀 걸렸는데 슬슬 다리가 아파왔다. 보통 중간중간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두기 마련인데 여기는 그런 게 없다. 요시고도 그랬던 걸 보면 여기 전시장 특징인 것 같다. 그런데 거의 전시 말미에 암실 같은 공간이 따로 마련 되어 있었다.
커튼을 열고 들어가니 이번에 전시되지 못한 사진들을 포함한 더 많은 사진이 손바닥 정도의 크기로 인화되어 그대로 걸려 있었다. 재입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미 본 사진을 다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사진을 찾는 재미도 있었다. 그리고 모퉁이 하나를 돌아가면 큰 공간에 소파가 놓여져 있고 영사기로 작품들을 비춰주고 있었다. 가뭄에 단비같은 쉴 곳이다. 와이프와 나는 그곳에 앉아 쉬면서 이젠 영상으로 다시 사진을 감상한다. 액자-뷰잉렌즈-인화된 사진-영상. 이렇게 네 가지의 다양한 형태로 작품을 여러 번 감상할 수 있어서 다른 어떤 전시보다 괜찮았던 전시라고 생각이 된다.
4. 눈을 열었으니 지갑을 열 차례
마지막 관문이다. 굿즈샵. 기본적인 도록과 엽서, 포스터 등은 물론 마스킹테이프나 자석, 티셔츠 등 다양한 소품들이 갖춰져 있었다. 나는 두루 살펴보다가 도록을 집어들고 이걸 사, 말아 고민하게 되었다. 전시를 가서 그냥 자석이나 책갈피 정도는 샀지만 도록을 산 적은 없었다. 그만큼 사진이 좋았던 거겠지. 와이프한테도 몇 번을 살까말까 물어보다가 결국엔 큰맘먹고 도록을 샀다. 자석도. 와이프는 엽서를 하나 샀다. 생각보다 지출이 컸지만 그래도 괜찮다.
나와서도 한동안 전시회 사진들이 머리에 떠오른다. 이렇게 또 좋은 전시를, 그것도 아주 저렴하게 관람할 수 있어서 좋았다. 취미지만 요 근래에 사진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좋은 영감을 받을 수 있어서 앞으로 다시 또 좋은 마음으로 사진생활을 해야될 것 같다. 뭔가 멋있는 것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을 좀 더 바라보는 시선을 가꿔야 되겠다.